20년전을 회상하다.

작성일 18-06-21 22:57 | 7,899 | 4

본문

(브금재생)



첫 걸음



제가 바람의 나라를 처음 접한건 1999년 지하에 위치한 PC방에서 였습니다.


당시엔 디아블로2와 리니지, 포트리스2도 같이 전성기를 맞이 하였지만


그 중에 단연 으뜸은 바람의 나라 였습니다.


이름은 모르지만 동네에서 같이 뛰놀던 형들이 자리에 앉아서 바람의 나라를 하고 있을때


다가가 저에게도 알려달라고 청했습니다.


1794809220_9QDOFcjr_993F92345AB1DBDE29

(반드시 거쳐야 했던 모뎀창)


1794809220_CzdytneM_9903AC405AB1DF550A


처음 시작 했던 마을의 이름은 천안성.


다른 보통의 마을과는 디자인이 약간 달랐습니다.


그렇게 2시간을 내리 다람쥐만 잡다보니 레벨 5가 되었고


직업을 갖기전엔 안된다며 경험치 상승이 중단 되었던게 기억 납니다.


하지만 PC방 내 아무도 직업길드가 어디있는지 몰랐고


동네 형들과 친구들 5명이 달라 붙어 가입되는 직업길드를 찾아 말 그대로 모험을 떠났습니다.


얼마나 헤맸을까?


천안성에서 도적의 길을 발견하게 됩니다.


재물은 도토리 몇개와 토끼고기 였던거 같은데


사부님께 대충 쥐어주고 도적이 되서 기뻐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직업을 갖고 나면 더 쎄지고 게임이 쉬어지는 줄 알았더니


필요 경험치만 늘어나고 아무런 이점이 없었던 점에서


큰 실망을 했었습니다.


무기가 목도에서 목검으로 바뀌고,


사냥터가 쥐굴이 되었을때


레벨 11을 찍으니 체험판이 끝났다며 접속이 끊겼습니다.


저는 바람의나라가 되는 PC방을 찾아 떠납니다...









도적?



1794809220_u0f62USr_99F2F7405AB1E2081B

(내용과는 상관 없습니다) 



직업을 가진 기쁨도 잊은채 평민과 다를빠 없는 사냥을 계속 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레벨 18을 찍었을 무렵, 속성 마법을 배우게 되는데


이것이 신세계 였습니다.


이 마법을 주술사는 레벨6때 배운다는걸 


나중에 듣고서는 깜짝 놀랬지요.


하지만 이내 곧 의문이 들었고


씨팔 이게 무슨 도적이야?라는 물음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습니다.


uuuuuuu의 반복과 반 강제된 뢰진주는


막대기질 보단 훨씬 빠르게 잡아서 좋긴 한데 도대체 이걸 언제까지 계속 해야되는지 몰랐습니다.


당시 피씨방의 가격은 1시간에 1500원 이었고, 저의 용돈은 제한적 이었습니다.


항상 시작 하기전 어떻게 할지 최적의 루트를 짜야만 했지요


영겁의 시간을 투자하여 얻은 최종 결론은


쥐굴 다음 나오는 뱀굴에선 약간 더 색이 짙은 뱀이 있습니다.


이 녀석은 경험치 1000을 줬고 뢰진주 두 세방에 죽었지요


여우나 곰은 경험치를 훨씬 많이 주었지만 맺집과 데미지가 강력하여 도망다니며 사냥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힘들게 다른데서 사냥 하지 말고 


투명과 비영승보가 갖추어 질때까지 뱀굴에서 살기로 작정 합니다.


1794809220_AjQWrwL0_9995D6425AB1E9D90C


그렇게 수없이 많은 돈과 시간을 PC방에 꼴아 박고 나서야


38을 찍고 꿈꿔왔던 철검을 낀 저는 또래 아이들 중에선 이미 슈퍼스타가 되있었습니다.


쥐 다음 몬스터는 구경도 못해본 친구들에게 말로만 들었던 자호를 보여줬으니까요.


게임에 대한 지식이 쌓이고 노하우를 터득하니


레벨업 속도에도 탄력을 받게 되었죠.


눈 깜짝할새 50을 찍게 되고 웅담과도 작별하게 됩니다.











지존이 되다



1794809220_irWaTzUf_99C1124A5AB1ED1607



무기는 철검에서 야월도가 되었고


이제부터 본격적인 그룹사냥을 시작 했습니다.


도사는 체력을 빨리 밀어 줬지만 힘들었고


주술사는 상대적으로 도사보다 느린대신 


마비라는 마법이 있어서 굉장히 편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 시기에


가정용 PC의 보급과 함께 대한민국에 ADSL이 상륙 합니다.


2000년 6월 18일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거실에 떡하니 설치 되있던 PC.


저는 더 이상 PC방에 갈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저는 더 이상 시간에 쪼들려 급해질 필요가 없었습니다.


하루에 1시간씩 느리지만 꾸준히 근 이 지나서야 레벨 50을 찍었지만


하루죙일 내 마음대로 게임을 할 수 있게 되니 


99를 달성 하는데 두 달이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옷의 색깔이 변했고 사냥 실력도 나날히 올라갔습니다.


전갈-유령-도깨비로 이어지는 사냥터의 계보.


별거 아니지만 웃긴점이 하나 있었는데

 고구려의 도깨비굴은 걸어서 갈 수 없었습니다.


필살기는 상대적으로 전사보다 빨리 배워 초반엔 유리했지만 (도적 50 전사 73)


90쯤 되니 체력적인 우위가 높은 전사의 지명도가 훨씬 높았습니다.


그때쯤 되면 도사들도 몇 대는 맞아도 버티고


생명의기원 이라는 최고의 회복기가 있었기 때문에


도적은 밀려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도적들이 99 찍기전엔 


절대로 경험치를 팔면 안된다던 금기를 깨고


눈물을 삼키며 경험치를 팔았습니다.


그렇게 경험치를 팔아도


최고난이도 던젼인 흉가의 출입은 상상도 할 수 없었습니다.


순수하게 플레이 타임 으로만 따졌을때


90-99가 1-90보다 훨씬 길었습니다.


그렇게 깹굴에서 한 달 가까이 쳐박혀서 사냥만 하고


제가 99를 달성할때 쯤 거의 동시에


일본과 3차 승급이 나왔습니다.



1794809220_QwPSCYlD_9985303F5AB1FB8918



특히나 주술사 1위 였던 척 같은 경우에는


다른 랭커들과는 그 궤도를 달리 했는데,


이 당시 현인은 조~~금 대단 했습니다. (복합적인 의미로) 


진짜 밥만 먹고 게임만 했어야 가능했을 정도로....


소수의 인원 밖에는 도달 할 수 없었던 경지 입니다.










잠깐의 휴식은 도약하기 위한 준비자세



1794809220_Fb5iM806_99C301415AB1FE320C

(내용과는 상관 없습니다) 



99까지 너무 급하게 달려 오느라 몰려오는 현자타임에 심신이 지친 나머지


사냥이 아닌 다른게 하고 싶었던 저는


 먼저 한 두고개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가장 처음 토끼를 잡고, 다람쥐를 잡은 다음 돼지를 지나쳐


마지막엔 퀴돌이를 찾아서 퀴즈를 풀고 네 고개에 입장하면 뱀이 나왔죠


홈페이지에서만 보던 북방대초원에 가서 경번팔찌도 만들어 봤습니다.


일본에서 일주일간 틀어박혀 먹자짓으로 이가닌자의 검도 만들어 봤구요


마지막엔 당시 경쟁의 꽃인 어전의 밭 이란 곳에서 몇날 며칠을 살았습니다.

(심지어 못먹음)


부여성이나 국내성같이 큰 성의 무한장은 지존들이 즐비 했는데 


그 외의 성에는 상대적으로 저렙들만 이용 했습니다. 높아 봤자 70~80


그런 곳에 가서 보스 노릇도 해보면서 재밌게 놀았습니다.


놀자판에 빠져 있던 저를 구한건 어느 진인분의 마법 이었습니다.

2 0

댓글목록 4

돈 많이 벌어서 집에서도 공짜로 하고 싶어서 창꼬아이디를 만들고 즐기곤 했죠.. 2002년 세시마을 나왔을때는 매번 세시마을 놀러가서, 달맞이고개에 있기도 했는데..~
Copyright © 바람인사이드 - 바람의나라 클래식 PC게임 팬 커뮤니티. & 4th All Rights Reserved.

Login icons created by Freepik - Flatic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