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리오&소설] 바람의 나라: 붉은 여우의 계약 -2화-
본문
제2화. 계약의 대가
“오랜만이군, 유화.”
붉은 눈동자가 고목 위에서 반짝였다. 그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마치 칼끝을 숨긴 듯한 살기와 함께였다.
“설마… 너였냐. 그림자 숲의 이상한 기운. 다 네 짓이었군.”
유화는 지팡이를 바짝 쥐며 목소리를 낮췄다. 여우는 그 옆에서 털을 곤두세우고 으르렁거렸다.
그림자 속에서 붉은 구미호가 모습을 드러냈다. 여덟 개의 꼬리가 바람결에 나부꼈고, 눈동자엔 천 년의 고독이 스며 있었다.
“다 내 짓이야. 하지만 이유는 있어.”
그녀는 유화에게 다가왔다. 발걸음은 조용했지만, 그 발걸음 하나하나마다 숲이 흔들렸다.
“유화. 우리, 다시 계약하자.”
“…….”
“너의 힘이 필요해. 저 너머, '흑사문(黑邪門)'이 깨어났다.”
그 이름이 입에 닿는 순간, 유화의 표정이 굳었다. 흑사문. 이미 수십 년 전에 멸망한 사파의 비밀 조직. 사람들의 영혼을 먹고, 시간을 거슬러 세계의 균형을 뒤흔들려 했던 자들.
그 중심에는 '망자의 책'이라 불리는 금지된 고서가 있었다.
“네가 무슨 짓을 벌였길래 그런 놈들이 다시 돌아온 거냐?”
“나도 몰랐다. 내가 깨어나자마자, 그들도 움직이기 시작했어. 우연이라고 생각하진 않아.”
붉은 여우는 꼬리를 휘날리며 유화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너의 도술과 나의 혼백. 다시 이어지면, 흑사문을 막을 수 있어.”
“다시 말하지만… 그 대가는?”
“…네 수명 일부. 그리고—”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숲 너머 어딘가, 거대한 검은 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안개가 스멀스멀 땅을 기어오르며, 나무의 생기를 앗아갔다.
“그리고, 네가 가장 아끼는 것을 잃게 될 거야.”
유화는 잠시 눈을 감았다. 손에 들린 부적이 가볍게 떨렸다. 그의 옆에서 꼬마 여우가 불안한 눈빛으로 올려다봤다.
“…좋아. 계약하지.”
“정말… 괜찮겠어?”
“이미 시작된 일이라면, 누군가는 막아야 해.”
붉은 여우는 고요히 고개를 끄덕이고, 유화의 이마에 이마를 댔다. 그 순간, 붉은 빛이 폭발하듯 번져나갔다. 숲 전체가 진동했고, 머리카락 끝에서 발끝까지 거대한 정령의 기운이 깃들었다.
“계약 완료. 이제부터 넌 내 주인… 아니, 동료다.”
그리고 멀리서, 봉인된 산맥을 넘어서 뭔가가 깨어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흑사문의 제1사도, '흑월참마'가 눈을 떴다.
[다음화 예고 – 제3화. 망자의 책과 붉은 길드]
: 유화는 붉은 여우와 함께 수도 '부여성'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과거의 동료이자, 이제는 적이 되어버린 도적 길드와 조우하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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