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무렵의 바람의나라 이야기(1)
본문
바람의나라 옛날이야기를 찾다가 제 예전 블로그에 써놨던 글이 있었길래 퍼왔습니다
이 글을 썼던것도 2011년정도이므로, 이 본문중에서 말하는 "지금" 도 상당히 오래전 일입니다 ㅋㅋ
2018년인 지금과는 또 다를지도 모릅니다.
저도 그 시절을 정확하게 기억하는것은 아니므로 일부 잘못된 사실이나 일반적이지 않은 내용이 포함될수도 있습니다
마을
- 당시 연서버는 각 성 이동시 반드시 로딩맵이 있었다 (ex 평양성 -> 졸본성)
(접속자수가 워낙 많았기 때문에, 각 성이나 지역별로 세밀하게 서버가 나뉘어져있었던 모양)
- 지금처럼 국가간 인구 차이가 심하지 않았다 국내동 동쪽도 어마어마한 아이템 시장이 펼쳐져있었고
국내성 성문밖 우측 위 구석등에서는 고가 아이템을 사고파는 유저들이 모이는 곳으로 유명했다
사냥터
- 당시 경험치 45만, 50만의 최고의 사냥터 흉가. 그러나 당시 플레이 인원에 비해 던전의 수가 턱없이 부족했다
그러다보니 사냥은 기본적으로 여러 그룹의 경쟁이었고 사냥중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되도록 다른 그룹이 들어오지못하게하기위해)
흉가 출석이 존재했다 (사자후로 수시로 사냥중이라는 것을 알리는것)
나중엔 각 성들의 제2,3,4성과 신국내성 신부여성이 생기면서 흉가의 수도 대폭 늘어났지만 그런데도 부족했다.
- 도꺠비굴도 어느 정도 출석이 있었다. 주술사 마력 3.2~3.6 이 저주헬 깹한방으로 기억하는데 필자도 많이 이용했다.
도깨비굴의 도깨비불이라는 몹은, 지금의 초록색불꽃의 형태와 작은점 모양 두가지 모습으로 번갈아가며 수시로 모습을 바꾸었는데,
이 작은점이 굉장히 시각적으로 인지하기 어려웠기때문에, 주술사의 경우 수시로 죽었다
당시 공력증강을 사용하면 대체로 체력이 100남았기 때문에 방심하고 있다가 뒤에서 접근한 도깨비불에게 뒤통수 따이고 그대로 사망했다
- 산적굴도 거의 주술사의 던전이었다. 흉가보다 경험치가 높은 사냥터 였지만, 당시 흉가는 결혼후에 사랑호출기를 이용한 사냥이 굉장한 효율을 발휘했던 점에 비해, 산적굴은 사냥터내에서의 사랑호출기의 사용이 불가능했고, 산적굴의 지형상 통로가 좁고 미로형태인점 등으로 격수 & 도사 그룹에게 상당히 불리한 조건이 많았기 때문에 주술사에게 사냥터로 사랑받았다.
(다르게 말하면 흉가에서는 격수 도사그룹과의 경쟁에서 완전히 밀리기 때문에 산적굴로 쫓겨났다고도 표현할수 있을듯)
(어쩌면 산적굴 자체가 주술사를 위해 만든 던전일지도 모른다)
- 북방대초원이 처음 추가 되었을때는 문비 등과 같은, 유저의 캐릭터와 모양새가 굉장히 흡사한 몬스터가 드물었기 때문에 유저인줄 착각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
- 당시 북방대초원은 1 11 21 31 층에서만 부활이 가능했기 때문에 상당한 난이도를 자랑했으며 (당시엔 사냥중에 사망하는 것은 자주있는 일이었다), 특히 32층 이상의 몬스터들은 당시 구현되어있는 장비들이나 유저들의 체력 마력 수준에 비해 상당히 강력했기 때문에 32층과 31층 포탈 근처로 몹을 몰아와서 도사가 차폐를 걸고 몹을 움직이게 못하게 한뒤 격수가 치고 빠지는식으로 잡거나, 마려나 소천대사를 잡을때는 사자후로 출석 (ex 33 마려, 35 소천 (굴 전체 마법을 사용하기 때문)) 을 하는 등 항상 안전을 고려하여 사냥하였다.
- 북방대초원 초기에는 철거인, 북천황, 북천황신수가 미등장상태였다 (황금류 이상이나 월아검도 미등장)
아이템
- 깹방(도깨비방망이)이 굉장히 고가였기 때문에 (100%와 99%의 가격차이도 상당했다) 깹방이 화폐단위로 쓰이던 시절이 있었다
(아이템을 거래할때 깹방의 개수로 교환하는것)
- 월아검 등장 초기에는 월아격이 존재하지 않는 쓰레기 무기템였다. 월아격이 구현된 이후 시세가 폭등했다.
마법
- 당시 모든 던전의 모든 몬스터에게 기원류 마법이나 모든 버프 (라고 해봤자 보호 무장 대지의힘 정도)가 가능했다
흉가 경쟁등에서는, 체력마력의 수준이 높은 팀이 몹에 보무를 걸고 사냥을 시작하면, 수준이 낮은 상대팀은 포기하고 떠날수밖에 없었다.
- 모든 저주류 마법이나 초기의 노도성황은 pk 가능지역이 아닌 일반적인 마을에서도 다른 유저에게 걸 수 있었다.
그 때문에 유저들이 모이기 쉬운 국내성 부여성 동서남북 문에는 저주나 혼마술 테러를 가하는 비매너 유저들이 많았다
유저 마법뿐만아니라 풍검 운검 용랑 용겸의 저주격 또한 일반맵에서도 유저에게 가해졌다 (잠시동안 버그였나? 잘 기억이 안난다)
- 노도성황의 경우 굉장히 치명적이었는데 운영자는 이걸 왜 장기간 방치했었는지 이해를 못하겠다.
- 공력증강을 하면 체력이 100남았다. 도사는 부활이라도 있지 주술사는 죽는것도 사냥의 하나의 과정이었을 정도다.
어느 던전이든 주술사의 시체가 널려있었다.
- 소혼강신으로 소환하는 몬스터는 일반 몹처럼 아이템도 똑같이 드랍했다. 이것은 즉 도사가 소환하는 해골도 호박을 쏟아냈다는 거다.
이로인한 호박벌이 매크로도 일부 존재했다 (극지방 주막에서 몰래행해졌었다 = 주막에서는 곧바로 왈숙이한테 호박을 판매할수 있기 때문에)
사냥터에서 보무걸고 잡는건 저도 이글 보고 기억 났네요
주술사로 흉가에서 보무걸고 노저주 헬파이어 한방이 나올때 얼마나 뿌듯했는지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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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스님의 댓글


낙랑섭힐러갑님의 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