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씨 바갤펌) 20주년이라고 하니 예전 이야기를 좀 해볼까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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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baram&no=1686114
dc에 글을 안 쓰다보니, 링크가 잘 붙는 지도 잘 모르겠지만,
어느사이에 20주년이라고 하니, 바람의나라 음악 만들었을 때가 생각이 나서, 기억나는 거 위주로 풀어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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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에 바람팀 들어가서 처음 만든 곡은 선비족 평원. 입사는 했는데, 소프트라던가 장비가 하나도 없었고, 일단 입사 후 첫달은 게임 플레이만 하면 된다고 해서 연서버에서 주술사 하나 만들어서 시작. 이미 수백만개 아이디가 있던 시절이라 캐릭터이름 뭘 만들어도 다 있는 아이디라고 떠서 홧김에 지나가던 초딩도 비웃는 아이디를 만들게 됨... 전체 게임 구조 파악하라고 호떡 가이드북을 건네받음. 책을 보다보니 북방대초원이 마음에 들었고, 입사후 대략 2주 후 소프트와 신디 도착했을 때, 북방대초원을 이미지로하여 일단 음악을 만듬. 그런데, 이왕이면 구맵보다는 신맵 위주로 음악을 먼저 추가했으면 좋겠다고 하여, 그걸 선비족 평원에 사용. (첫 음악 추가 업데이트 때엔 북방대초원에서도 선비족 음악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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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p3으로 음악 찾아본 이라면 곡명을 알 수 있을텐데, 언리미티드 사가 음악들을 아주 좋아했고.. 사운드트랙 2번 디스크의 곡명 영향을 받게 됨. 전투 음악들은 BT, 던전 음악은 DG 뭐 이런 식으로 짧게 표기하고 있었던 것. 그래서 중국 던전은 DC 시리즈로, 국내 던전은 DK. 선비족 평원은 S FIELD였는데, 그것과 이름 맞추는 느낌으로 흉노족 평원이 H FIELD. 선비족 평원 바로 다음에 만든 게 세작의 집이었고, 세작 하우스 같은 느낌으로 S HOUSE가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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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가는 처음에 흉가라는 단어에 어울리는 흉흉한 분위기의 곡을 만들었으나, 너무 흉흉하다고 하여 사용하지 않았고, 어떤 면에서는 완전 상반되는 분위기의 음악으로 방향을 결정. 흉가라는 단어에서 오는 느낌과 음악과 매치가 안 될 수도 있는데, 가이드북 기준으로는 흉가가 경험치를 모으기 위해 무한정 반복하는 가장 유명한 사냥터였고.. 무아지경에 빠진 상태로 도적이 스피디하게 투비 건너뛰어가면서 빠르게 잡아가는 광경을 반복하는 것을 이미지화. S FIELD, S HOUSE, H FIELD를 이미 만든 상태라, 시리즈 맞추는 느낌으로 H HOUSE라고 제목 붙였는데, haunted house의 h지만, 흉 하우스라고 읽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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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성과 국내성은 서로 상반되는 분위기로 만들어야겠다는 계획은 세웠는데, 부여성을 먼저 만들었고, 국내성 분위기 잡는 게 힘들었던 기억. 사실 기타는 전혀 못 치는데, 12지신 유적의 경우도 건반으로 친 거라 음색만 기타일 뿐이긴 했는데, 하필 기획팀장은 기타를 좀 치던 이라 그거가지고 지적을 함. 기타로 연주하는 거 같지 않다고.. 약간 손보긴했지만, 기타로 연주하는 것 같지 않은 게 그렇게 문제가 있는건가 싶어서 그대로 밀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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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음악 업데이트 스펙은 추가 지역이었던 중국(장안성 등)과 부여/국내와 내부 던전, 국내에서 장안성 사이에 있던 지역인 12지신과 만리장성까지. 기존 지역은 플레이를 해보면서 돌아본 관계로 플레이어들 가득 있는 광경을 봤었지만, 신맵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없는 지역을 돌아다닐 수 밖에 없었는데, 혼자 말타고 만리장성 길 지날 때의 느낌이 어딘가 모르게 쓸쓸한 기분이라 음악 방향도 그렇게 잡음. 개발 도중이라 사람들이 없었을 뿐이지만, 만리장성이란 단어에서 오는 스케일감.. 같은 것 보다는 약간의 적막함이라던가 쓸쓸한 이미지가 먼저 떠올랐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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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첫 업데이트가 끝나고, 그 다음 타겟으로 삼은 지역은 일본과 국내 주변 지역(산적굴, 북극), 12지신내 지역. 산적 고층의 경우는 편곡이 너무 게임 스타일과 안 맞게 강하게 전자음악색이 강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들었지만 저층부와 구분하고 싶은 마음에서 강행. 일본숲은 기타 음색을 뭘로할까 확실하게 감이 안 와서 두 종류 버전으로 녹음. 일본신궁의 경우, 의도적으로 세작 음악을 편곡한 것들로 채웠는데. 일본몹들이 국내에 몰래 숨어들어온 게 세작이라는 설정을 시리즈 음악을 사용하는 것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NC2가 분위기가 더 심각한데 2와 3 배치를 바꾸면 어떠했을까 싶은 아쉬움은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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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가(through the seashore)의 경우 크로노크로스에서 영향을 받았는데, 배를 타고 가는 상황을 표현하려고 한 것이지만, 바람의나라에서 일본 갈 때엔 딱히 항해 기분은 안 나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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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음악 추가 때에는 소림사와 용궁 지역과 승급 관련 지역(길림, 태극던전, 암흑왕)들 위주로 범위를 잡았고. 스펙 여유가 있어 용궁 던전은 전부 다르게 만들었던 듯. 소림사의 경우는 역시 백열장의 존재감이 강하다고 느꼈기에, 여기저기에서 백열장을 수련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이 시기 전후로 음악 만드는 페이스가 상당히 빨랐는데(1일 1곡?), 기획팀장이 일좀 줄이라는 식으로 이야기했던 게 소림사 음악 만들어서 들려줬던 때였던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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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다시 메이저 업데이트 시즌을 준비했고.. 중국남부 지역, 4차 추가였던 듯. 이 시즌 추가곡 수가 많았던 걸로 기억. 가릉도(seaside town) 음악 스타일을 좋아하는데, 서풍의 광시곡 때에 만들었던 스타일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겠고.. 이전 업데이트에서 암흑왕 작업을 할 때, 젠도 안 되었는데 계속 그런 전투 음악 분위기가 나오는 것에서 위화감을 느껴, 북천황 만들 때에는 일종의 보스 대기 음악을 넣고, 보스가 젠되는 순간 음악이 바뀌는 방식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 프로그래머와 협의해서 추가함. 보스 잡는 순간 다시 바로 대기음악으로 바뀌어서 연출 완성도 면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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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천황 같은 경우는 일렉기타가 메인인데, 앞에서 언급한 대로 당시에는 기타를 전혀 못 치는 상태였음. 신디사이저의 기타 음색을 이용해서 음악을 만들었는데, 이 음악을 윗팀의 이석주씨(마비노기 음악 맡았던)에게 들려줬더니 그날 밤에 기타를 쳐서 녹음한 걸 보내줬고.. 음색차가 극명한 게 느껴졌기에 그걸 사용. 이후에 아스가르드 음악 뭔가를 만들었을 때에도 EWI로 연주해준 적이 있었는데, 그건 약간 과한 느낌도 들어서 사용하지 않고 원곡 그대로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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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삭산에 관한 초안 같은 아이디어라고 해야할 지, 그걸 냈었는데.. 팀 내에서 작업속도가 정말 빠른 그래픽 아티스트가 있어서, 그분과 함께라면 1000층 던전을 만들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같은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게 현실로. 앞층은 기존 던전 음악들을 썼고, 8, 900층 음악을 만들었는데 800층쪽이 더 센 분위기고, 900층이 뭔가 성취감의 끝을 향하는 느낌으로 가긴 했는데, 적은 900층이 더 강했던 관계로 이 둘 배치를 바꾸는 게 더 나았을까.. 싶은 생각이 일본신궁쪽과 같은 느낌으로 요즘도 가끔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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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시즌에 북방대초원 음악을 만들었는데, 처음 이 팀에 들어왔을 때 느꼈던 북방대초원에 대한 이미지와, 이 때의 이미지는 많이 달랐다. 대륙의 기상이 느껴지는 광활함 같은 것들이 첫 인상이었다면, 어느 사이엔가 북방대초원의 경우도 그리 많은 사람들이 찾지 않는 곳이란 기분이 더 많이 들어서, 스케일감 보다는 적막함이라던가 쓸쓸함 같은, 당시 느꼈던 감정을 담음.
북방대초원 3 같은 경우는 역시 앞에서 언급했던 기타 칠 줄 아는 기획팀장의 딴지가 있었는데, 이건 기타 연주 느낌을 더 극적으로 줄 수 있을 것이라고 하면서, 기타로 치는 것 같지 않은 기타 음색에 대한 지적. 기타를 못 치다보니 어떤 면에서는 기타 연주에 대한 환상 같은 게 있는데, 오히려 북방대초원3에서의 기타 느낌은 그런 환상의 표현에 더 가깝지 않았나 싶어서, 역시 의견 충돌한 상태에서 강행. 14년전 일인데 뭔가 이런 지적 받고 충돌이 나야 기억에 더 오래 남긴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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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틀곡도 이 때 추가. 이승환 8집을 나름 재미있게 들었는데, Christmas Wishes는 징글벨의 앞부분을 아주 살짝 따온 후 전혀 다른 형태로 진행하는 곡이었는데, 나름 그게 기억에 남아있어서, 그것의 영향을 받았던 것 같다. 처음 연서버에 캐릭터 만들 때 부여를 선택했었기 때문에, 부여성 테마의 앞부분만 살짝 활용하고 이후로는 다르게 전개하는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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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관련 업데이트 후, 어둠의전설로 팀을 옮겼고, 이후 아스가르드로 이적하여 병행하는 쪽으로. 그래서, 4차 업데이트 이후 부터는 바람의 나라 상황은 잘 모름. 어떻든 4차까지 하면서 바람의 나라에 넣어야 할 만한 음악은 대부분 넣었다고 판단한 것도 있고, 어둠의전설 쪽 요청이 컸던 걸로 기억. 4차 승급 작업하면서, 스킬 효과음을 처음으로 만들어봤는데, 이것도 나름 재미있었다. 도사 4차 힐 효과음 만들었던 때의 경험은 이후 아이온 만들 때에도 영향을 줌. 폭류유성 사운드 만들 때 스테레오로 만들었는데, 게임내에서 그게 최초의 스테레오 효과음이었던 걸로 기억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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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가르드 한창 작업하던 2004년경 바람팀에서 음악 제작 요청이 왔는데, 국내 던전과 공성, 전통혼례식이었음. 셋이 동시에 왔는지, 따로 였는지는 기억이 애매하고. 아스가르드때에는 사용 장비에도 변화를 주던 시절이었는데, 간만에 바람의나라 작업을 하게 된 거라 처음 바람의나라 만들때의 기분으로, 장비 세팅하고 제작. 제일 마지막에 만든 게 공성인데, 이건 다른 추가 신스도 안 쓰고, 처음 입사했을 때의 것과 같은 작업 환경으로 일부러 맞춰서 만들었다. 시작과 끝을 맞춘다는 기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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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혼례식 음악이 어떤 면에서는 바람의나라라는 게임의 음악을 맡기로 하였을 때, 이 게임의 음악을 어떤 방향과 분위기로 잡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결과라고 할 수 있겠다. 팀에 합류한 게 바람의나라 6주년을 앞두고 있던 상태였고, 모르는 사이에 게임 유저의 대다수는 10대 초반의, 이른바 초딩게임의 대명사 중 하나인 게임이었다. 우리나라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 전통문화 기반이라는 점 때문에, 전통악기를 써서 국악 특유의 분위기를 내야하는가를 고민하기도 했고, 저연령게임이라는 것을 의식해서 더 가볍게 가야 하는가도 고민했었다.
처음 이 게임을 만들때 주요 타겟층의 연령대가 그렇게 낮아질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바람의나라 음악 방향은 나름, 그러한 고민의 결과였고,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로 접근하지 않는 것과, 개인적인 경험과 감정을 담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메인 타겟이 이러이러한 사람들이니 그 사람들에게 맞춰야겠다기 보다는, 스스로 즐기면서 느꼈던 감정을 전달하고 싶었다.
흉가라던가 전통혼례식 같은 건 단어를 들었을 때 바로 나오게 되는 이미지가 있겠지만, 일단 그것을 피하고 조금 더 개인적인 해석을 담는 쪽으로. 전통혼례식의 경우는 엄숙한 예식이라기 보다는 여러 사람들과 함께하는 축제라는 것에 더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다. 한명씩 돌아가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그리고 그렇게 나오게 된 각자의 이야기들이 모여 하나의 축제가 되는 모습을.
기억나는 걸 꺼내다보니 의외로 기억이 많이 나서 어느 사이엔가 일대기로…
따봉
이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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